이방원 왕자의난 알아보기

Posted by sheneedsme
2015. 11. 12. 20:10 잡동사니

최근에 SBS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총 50부작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긴만큼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핵심인물과 핵심사건으로 이방원 왕자의난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드라마 속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됩니다.


최근 포스팅한 다양한 글들(이성계 가계도, 이방원 가계도, 정도전의 죽음) 속에서 슬쩍슬쩍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오늘에서야 왕자의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방원 왕자의난)


왕자의난은 총 2회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1차 왕자의난은 이복형제간, 2차 왕자의난은 동복형제간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혹시 모르실까봐 말씀드리자면 이복, 동복에서 복(腹)자는 <배 복>자 입니다. 그래서 이복형제는 배 다른 형제, 동복형제는 배 같은 형제, 즉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부인을 6명 두었습니다. 그 중 정실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6남 2녀를 낳았고, 신덕왕후 강씨에게서 2남 1녀를 낳았습니다. 



(선덕왕후는 오타입니다. 신덕왕후가 맞습니다.)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6남이 차례대로 진안대군(방우), 영안대군(방과, 정종), 익안대군(방의), 회안대군(방간), 정안대군(방원, 태종), 덕안대군(일찍 죽음)입니다.



그리고 신덕왕후 강씨에게서 낳은 2남이 첫째 무안대군(방번), 둘째 의안대군(방석) 입니다.



이방원 주도의 왕자의난은 태조 이성계의 후계자 책정 과정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태조는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자식들을 제쳐두고, 평소 총애하던 신덕왕후 강씨의 둘째아들 방석을 세자에 책봉합니다.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1398년 무인년 8월 25일, 태조 7년. 방원을 중심으로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남은 등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하고 살해하였으며, 세자 방석과 그의 동복형제 방번을 죽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1차 왕자의난입니다.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승자의 기록), 정도전, 남은, 심효성 등이 이성계의 병을 핑계삼아 왕자들을 대궐로 불러들인 후에 궁궐의 병력을 동원하여 왕자들을 공격하기로 계획하였다고 합니다. 왕자들은 아무 것도 모른채 궁궐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방원이 형들의 걸음을 막았습니다. 


궁문 앞에 불이 꺼져있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원은 집으로 돌아가 부인 민씨가 몰래 숨겨둔 무기로 정비하여, 이숙번, 이거이,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 등과 광화문으로 쳐들어 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자는 방원의 세력에 기가 죽어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고, 정도전은 이 때 남은 등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도전의 최후는 다른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터무니 없는 것이, 제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정도전이라도 이성계의 자식들을 죽일 계획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고, 그런 거사를 치루는 날에 한가롭게 술이나 먹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거사에 성공한 후에 방원의 심복들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지만 방원의 뜻에 따라서 둘째인 방과가 세자에 책봉되었고 곧 왕(정종)이 됩니다. 이방원이 바로 왕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세간의 이목이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시간이 흘러 1400년, 넷째형 방간이 박포와 함께 사병을 동원하여 2차 왕자의난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방원의 세력이 워낙 강하였기에 왕자의난은 조기에 진압되었고, 방원의 힘만 더 실어준 꼴이 됩니다. 2차 왕자의난을 통해 방원에 대적할 만한 반대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이로써 이방원은 왕위 계승의 길을 나아가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졌습니다.


정종은 상왕 태조의 허락을 통해서 1400년 2월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고 이어서 11월에 왕위를 물려줍니다.


<이방원 왕자의난 알아보기> 라는 주제의 글도 이렇게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입니다.